요새 나의 육퇴 시간을 위로해주는 예능들은 대환장기안장과 지구오락실이다. 기안84가 게스트하우스 주인으로 나오는 대환장기안장과 지구오락실에서 괄괄이를 담당하는 이영지는 모두 ADHD를 앓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더 애정이 가는 예능인들이기도 하다.
ADHD남자아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ADHD를 가진 걸 정확히 모른 채로 성인여성으로 자란 나의 입장에선 둘이 예능에서 나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전형적인 ADHD 모먼트 들이 보여서 웃기기도 하고 가끔 서글퍼지기도 한다.
오늘은 이런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해보고 싶어져서 글을 쓴다.
1. 대환장 기환장의 기안84
기안84는 워낙 기인으로도 유명하고 이미 나혼자산다를 통해 ADHD라 정신없고 즉흥적인 모습들이 워낙 많이 나와서 개인적으로는 그런 모습이 나중에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되서 그러지 않을까 싶은 모습이라 늘 마음이 편하진 않다.
대환장기안장에서도 그런 모먼트 들이 꽤나 나오는데 ADHD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알 수 있을 만한 상황 들이라 몇가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뛰어난 상상력과 깔끔치 못한 마무리
ADHD가 있는 경우 다른 사람들보다 상상력이 더 풍부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역시 비슷한 쪽이라 광고쪽 일을 하고 있는데 기안84의 기안장 역시 바다위의 숙소나 클라이밍과 미끄럼틀, 봉을 통해 내려가고 올라가야하는 구조를 상상해내는 것을 보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멋진 상상력은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걸 적용했을 때 어떨지에 구체적으론 생각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멋진 아이디어이긴 했지만 실제로 기안장에서 숙박할 숙박객의 편의까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어떤 숙박객이 올지 전혀 모른 상태에서 기안장을 고안하긴 했지만 봉을 타고 오르내리면서 식사를 해야하고 야외에 있는 샤워시설에서 깨끗히 씻고나서도 땀범벅이 된 채 클라이밍을 해야하거나, 별빛과 달, 바다를 보면서 낭만적으로 잠을 청할 수 있는 야외침대지만 비가 오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도 고려하지 못했다.
아마 기안84가 상상한 스케치를 직접 인부들과 함께 기안장을 만드는 과정이 있었다면 아마 기안84는 바로 포기했을 것이다. 만드는 과정에서 그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지, 숙박객 입장에서 얼마나 불편한지 많은 의견이 오고 가는 그 상황 속에서 굉장한 압박감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안84의 스케치를 가지고 똑같은 기안장을 만들어낸 넷플릭스가 대단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기안84가 운영하는 내내 숙박객들에게 부채감을 계속 가지고 스트레스 받아하는 모습이 보여서 ADHD부모로써 좀 안쓰럽기도 했다. 이런 거대한 압박감이나 부담감이 ADHD입장에서 얼마나 관리하기 힘든 스트레스 포인트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원래도 공황장애 등을 앓고 있다고 하는데 촬영도중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깨끗하지만 깨끗하지 않은
기안84의 기행 중 하나가 눈에 보이기엔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행동 들인데 그래도 나름의 위생 기준이 있기는 하다. 다른 사람들이 먹는 요리에는 손을 쉬지 않고 계속 닦아내지만 본인의 위생과 관련된 샤워나 세수는 되는 대로, 내키는 대로 하는 모습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나도 비슷한데 요리할 때는 과할 정도로 모든 과정에서 손을 조금씩 씻어낸다. 그리고 청소는 열심히 하지만 정돈은 영 꽝이다. 이런식으로 어떤 부분에선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위생에 집착하지만 정돈이나 순서, 개인 위생 등에는 별로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은 우리 A에게도 보여진다. 그래서 이런 모습도 ADHD의 특성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지지가 꼭 필요한
대환장기안장에서 기안84는 본인의 실수나 선택 들이 숙박객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편을 끼칠까봐 늘 걱정하고 스트레스 받아한다. 대부분의 ADHD들이 그렇듯이 빠른 판단과 과감한 선택을 해놓고 오랫동안 후회하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기안장의 2인자 방탄소년단 진은 기안84의 선택과 처음의 의도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응원한다. 갈피를 잃고 작아지던 기안84는 그런 진의 지지에 힘을 얻고 본인의 선택을 밀고 나갈 용기를 얻는다. 그덕에 대환장기안장은 말그대로 대환장으로 시작해서 숙박객 모두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끝나게 된다. 단언컨대 기안84만 있었다면 또는 진이 없었다면 이런 특별한 추억으로 마무리되긴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ADHD가 있는 모든 이들은 기안84처럼 불꽃처럼 반짝이며 빛이 나는 순간들을 가진다. 그 불꽃을 잘 다듬어 요리를 하고, 철을 녹여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멋진 유리공예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만 있다면 더 멀리, 그리고 더 높게 날아갈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겐 있다. 진처럼 응원하고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누군가가 내 아이에게 되어주고 싶다.
2. 지구오락실의 이영지
지구오락실은 은지, 유진, 영지, 미미 이렇게 멤버 4인방의 조화가 너무 재밌는 예능이다. 특히 여기서 이영지의 모습은 나의 학창시절을 바라보는 느낌이라 남일 같지 않다.
늘 에너지가 넘치고 과하게 몰입하며 신날 땐 날아다녔다가도 에너지가 소진되거나 흥미가 없는 일에는 금새 심드렁해지는 이영지의 모습은 지구오락실의 많은 팬들을 만들기도 하지만 가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멤버들의 컨디션이 지친 상태에서도 예술혼을 불사르며 릴스를 창작하는 모습에 과하다는 댓글들이 달리고 텐션이 떨어지는 순간에 성실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이퍼포커스와 속사포의 말속도
뭔가 꽂히면 앞으로 달려가는 이영지의 모습은 늘 지구오락실 최고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이번 지구오락실 시즌3에서도 전남친토스트와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과하게 흥분해서 목소리까지 뒤집혀가며 제작진에게 따지는 모습은 정말 몇번이나 돌려봐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래퍼라 완벽한 딕션으로 제작진에게 이 토스트만 봐도 누구나 전남친 토스트라고 말할 수 있냐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ADHD의 특성인 말을 멈추지 못한다과 맞닿아있어서 너무 웃기다.
나 역시 맨날 말 좀 그만해라 시끄럽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서 늘 이영지의 텐션을 버겁다는 사람들의 댓글들이 내 일마냥 참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조용히 있으면 어디 아프냐, 왜 분위기 망치냐고 뭐라고 할꺼면서 텐션이 높은 순간에는 시끄럽다고 트집을 잡는 것이 ADHD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야박한 인심같아서다. 만약 이영지가 없었다면 지구오락실만의 텐션을 유진이와 미미, 은지만으로 유지하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에너지의 극과 극
이영지는 늘 하이텐션과 로우텐션만 존재하는 것 같이 보인다. 나 역시 ADHD로써 이 부분을 너무 공감하는 게 일을 해야하거나 신이 났을 때는 있는 에너지, 없는 에너지를 모조리 끌어다가 쏟아놓고 집에 왔을 때는 완전히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거의 24시간 촬영을 하는 현장에서 워낙 높은 텐션을 하루종일 유지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지친 모습의 이영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조절하면서 에너지를 쓰면 더 재밌을텐데, 라고 다들 생각하겠지만 ADHD는 그게 어려운게 문제라는 걸 아는 나로써는 오히려 지친 모습도 웃음의 포인트로 활용하는 나영석PD의 연출포인트가 매우 마음에 든다. 이런 부분 마져도 예능의 한 부분으로 승화시키는 게 정말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쉽지 않은 연출일텐데 이영지를 매우 아끼는 게 아닐까 싶다.
☑️노메이크업
지구오락실의 이영지는 노메이크업일때가 많다. 아마 메이크업을 하는 시간도 아깝거나 귀찮아서가 아닐까? 싶은 기분이다. 나 역시 여자지만 이상하게 메이크업을 하는 시간과 노력이 매우 귀찮게 느껴질 때가 많다. 뭔가 아주 작은 부분까지 집중해서 신경써야하고 완벽하게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매우 많이 드는 게 메이크업이기 때문에 하려면 완전무결하게하고 싶고 아니라면 그냥 선크림 정도나 바르고 멈추고 싶어진다. ADHD인 이영지 역시 비슷한게 아닐까 하고 혼자 생각해본다.
☑️예의없지만 예의있는
나영석피디에게 편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가끔 예의없어보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영지는 굉장히 예의있는 사람인 것 같다. 보통 자기만 생각한다거나 이기적이라거나 ADHD가 있는 사람들은 오해를 받을때가 많다. 사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선 조금 더 많은 주의집중력이 필요한데 ADHD에게는 이 부분이 좀 어렵다. 배려심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스트레스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거보면 이영지는 생각보다 늘 긴장하고 늘 조심하고 늘 신경쓰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얼마전에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기사도 보이던데 혹시나 이런 부분이 힘들지 않을까 싶다.
기안84는 우리 A가 컸을 때 저런 모습이면 어쩌지, 그래도 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니 괜찮겠지? 하는 마음을 선물해주는 사람이고 이영지는 나의 10대, 20대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들어준다. 둘 다 매력적이고 둘 다 재미있고 게다가 ADHD가 있다고 하니 더 애정이 가는 예능인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활동해주고 더 많은 사람을 받아 사람들이 ADHD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혹시나 나처럼 ADHD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이영지나 기안84의 모습을 보며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해보자. 기행이라고 불리지만 잘 보면 ADHD라서 그런 것일 수 있고 뜬금없는 행동이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는 선택일 수 있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보면 내 아이에 대한 이해도 같이 높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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