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ADHD라는 처방을 받고 나서, 아니 사실 받기 전부터 ADHD라는 것에 대해 공부할 때부터 의심했었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눈 앞의 물건도 잘 찾지 못하고, '아! 맞다'를 입에 달고 사는 남편 또는 어릴때 늘 시끄럽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이 많으며 늘 하고 싶은게 많은 내가 ADHD가 있을꺼라고 말이다.
ADHD는 유전의 확률이 매우 높아서 부모 중 1명에게 ADHD가 있을 경우, 아이에게 유전될 확률이 40에서 60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만약 나와 남편이 모두 ADHD라고 한다면 그 확률은 75%까지 올라간다. 아이 넷을 낳았을 경우 그 중 3명은 ADHD일 수 있다는 뜻이다.
남편은 아직 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에 대한 양육스트레스가 너무 높아서 결국 주의집중력검사를 받아 ADHD를 진단받았다. 사실 진단만 이번에 받은 것이지, 여동생의 아들인 조카도 ADHD판정을 받았고 나의 친정아버지도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얻으셨지만, 취미가 자주 변하시고 감정조절을 어려워하실 때가 많았기 때문에 ADHD가 아니셨을까 싶기 때문에 그냥 ADHD가 가족력이구나 싶다.
둘째 역시 아직 4살이긴 하지만 나와 남편이 모두 ADHD라면, 혹은 나만 ADHD일지라도 ADHD일 확률이 높을테니 무조건 7살이 되면 풀배터리와 주의집중력검사를 해볼 작정이다. 형제 중 ADHD가 있어도 아닌 경우와 비교해서 ADHD가 있을 확률이 30%나 되기 때문이다.
ADHD가 있는 부모가 ADHD아이를 키울 때 라는 글에서도 썼지만 부모에게 ADHD가 있을 경우, 양육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커진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부모가 ADHD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단받지 않았을 때 더 커지는 것 같다. 치료받지 않은 ADHD는 성인이 되어도 정리와 계획이 어렵고, 높은 충동성으로 일관된 양육이 힘들고 과몰입과 산만함으로 아이의 증상관리를 해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이가 ADHD라는 사실과 나 역시 ADHD일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겪었던 증상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증상들이 있어서 아이의 행동에 쉽게 흥분하고 격하게 반응하거나 과하게 혼내는 일들이 잦다.
이런 고민들로 아이가 진료 받을 때 같이 진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약물의 효과가 있는 시간 동안에는 감정의 기복이 낮아지고 조금 더 차분해져서 아이와 같이 있을 때 스트레스가 조금 덜 한 편이다.
나처럼 부모에게 ADHD가 있을 때 아이와 함께 치료를 받으면 다양한 장점이 있다고 한다. 그 부분을 한 번 알아보자.
1. 자녀와의 관계 개선
ADHD가 있는 부모가 ADHD가 있는 아이를 키울때 같이 치료를 받았을 때 좋은 점은 아이와의 관계가 훨씬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성격이나 상황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ADHD때문이라는 걸 인식하면서부턴 자녀의 어려움에 대해 더 공감하고 조금 더 참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아이를 양육할 때 생겨나는 마찰이나 감정적인 언행, 충동성, 아이를 잘 못 키우고 있다는 좌절감 등을 관리하기 조금 더 편해져서 아이와 불필요한 감정다툼을 줄 일 수 있다.
이렇게 서로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정서적 연결이 더 깊어진다는 것이 장점이다.
2. 감정 조절이 쉬워짐
약물 치료 등을 통해 부모가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아이 양육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면 부모의 안정적인 모습이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준다.
쉽게 흥분하거나 감정조절을 어려워하는 부모의 모습만 보고 자란 아이는 당연히 자신의 널뛰는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ADHD약물치료를 시작한 계기가 감정조절이 점점 어렵고 아이 앞에서 너무 화를 내거나 흥분하게 되서 였는데 현재 저용량인 콘서타18을 처방받아 복용하니 감정의 폭이 조금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힘든 부분이 있어서 폭세틴20도 추가로 처방받아 현재 적응중이다.
의사의 말로는 폭세틴이 엄마가 조금 더 편안해지고 감정조절이 잘 되도록 도와 아이가 조금 힘들게 해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길꺼라고 했다.
3. ADHD맞춤 환경
ADHD가 있는 경우 계획을 세우거나 그걸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 부모에게 ADHD가 있을 경우 아이에게 루틴을 적용해서 일상을 유지시키거나 예측 가능한 일상을 만들어주기 어려울 수 있다.
치료를 통해 이 부분이 좋아지면 부모도 아이도 일상을 쉽게 유지 관리하게 해주는 루틴을 지키는 게 조금 더 수월해지기 때문에 아이도 부모도 일상이 좀 더 편안해진다.
또한 부모 스스로 일정관리 등을 하기 위해서 알림, 메모 등의 다양한 방법을 구현하게 되므로 일관성을 강화하기도 좋다.
나 역시 ADHD 진료를 받기 전부터 일정관리가 어려워서 핸드폰 달력과 알람을 활용해왔고 아이의 하루 루틴을 냉장고에 화이트보드를 부착해서 정리하는 등의 노력을 했었는데 약물치료 이후엔 이 부분을 챙기는 게 조금 더 수월해졌다.
4. 긍정적인 대화
ADHD치료를 받고 있는 부모는 진단과 치료를 통해 전보다 더 스스로의 문제를 인식하기 쉬워진다. 자기 인식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되므로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한 편, 조금 더 차분하고 편안하게 아이와 대화가 가능해진다.
나 같은 경우는 약물효과가 있는 시간에는 아이에게 조금 더 친절해진다는 걸 느낀다. 보통은 내 컨디션이 피곤하거나 지쳐있을 땐 아이에게도 짜증섞인 대응을 하는 편이었는데 진단과 치료 이후 내 감정을 앞세우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아이의 무리한 요구에 벌컥 화를 내기 쉬웠는데 그나마 한 번은 차분히 되물어서 아이에게 좋은 돌려말하는 게 늘어났다.
다만 콘서타를 아이도 나도 복용중이기 때문에 둘 다 약물효과가 끝나는 시점에 부딪히는 경우들이 좀 늘었다. 이 부분은 앞으로 폭세틴을 추가하기도 했고 아이도 나도 점점 약물용량이 바뀔 것 같아서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5. 학교생활과 직장생활에서의 변화
아이의 준비물을 제대로 갖춰보내지 못한 적이 꽤 되었는데 콘서타를 복용한 이후로는 그래도 놓치지 않고 챙겨주게 된다. 하이클래스앱의 알람을 보고 기억해야지! 하고 했다가 까먹어서 못 챙겨보내는 경우가 확실히 줄었다. 바로 챙겨주거나 잊더라도 다시 기억할 수 있게 어딘가에 기록해놓을 수 있게 된다.
나는 프리랜서라 직장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집안일을 할 때도 하기 싫은 집안일을 미뤄놓지 않고 처리하기 조금 쉬워졌다. 덕분에 집이 아주 살짝 깔끔해지고 있어서 아이도 남편도 조금은 더 쾌적하지 않을까 싶다.
6. 스트레스 감소
진단 자체를 양육스트레스때문에 받은거라 진단받고 나서 남편의 이해가 크게 늘었다. ADHD가 있는 내가 ADHD+난독이 있는 아이를 2년 넘게 가르치느라 받았을 스트레스를 이해하고 남편이 아이를 일정부분 더 케어하기로 했다.
직접 아이를 가르쳐보니 어떤 부분이 어려운 지, 아이가 어떻게 스트레스를 주는 지를 겪어보게 되어서인지 집안 살림도 조금 더 도우려고 노력해준다. 덕분에 나도 집안일이나 아이 양육스트레스가 조금 줄어들었다.
ADHD가 의심된다면 병원에 가보자. 특히나 ADHD아이를 양육한다면 꼭 가보길 권하고 싶다. 처음엔 죄책감이 생길 것이다. 나 때문에 아이가 ADHD구나 하는 기분이 들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물치료를 받는 아이의 변화를 경험했다면 나 역시 변화할 것이다. 아이가 받아왔던 스트레스와 힘듦을 나 역시 몇십년간 받아왔다는 걸 기억하면 스스로가 더 안타까워질 것이다. 그땐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이젠 조금 편하고 가볍게 살아갈 새로운 기회가 생겨났다고 생각하자.
내가 약을 먹으니 아이 약물도 빼먹지 않게 되는게 좋다. 아이에게 화를 조금은 덜 내서 좋다.
나도 아이도 조금은 더 정돈되고 편안한 상태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서로 부딪히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둘 다 약효시간이 끝나면 신데렐라처럼 돌아오겠지만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아이는 아직 어리니까 더 빠르게 좋아질 것이고 나는 앞으로의 시간동안 아이와 더 나은 목표를 향해 조금 덜 힘들 게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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