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지루한 걸 진짜 참기 힘들어하는 ADHD였던 것 같다. 지금의 A나이인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이 뭐냐고 물어보면 난 분명히 구몬!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맨날 늘지도 않는 실력때문에 가방만 들어도 한 숨이 나오던 피아노보다도 매일 단순 연산만 몇장씩 풀어야하는 구몬수학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일주일 내에 다 못하면 그 숙제는 고스란히 이번주 숙제에 더해져서 다음주까지 해야할 숙제가 됐다. 그러니 무조건 일주일 안에 풀게하려는 엄마와 그걸 풀기 싫어하는 나와의 두뇌싸움은 정말 치열했다. 엄마는 놀러나가려는 나를 붙들고 구몬하고 나가라고 친구들과 노는 걸 막으셨고 나는 잠깐만 놀고와서 하겠다고 말하고는 늦은 오후에 돌아와선 삼남매의 저녁식사를 만드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서 TV를 보다가 그날 하루를 잘 넘기곤 했다. 그리고 나서 다음번 구몬선생님을 만나기 전 날 밤에는 하기 싫은 구몬을 앞에 두고 문제를 풀지는 않고 째려보다가 결국 몇 장은 남기고서 다음날 선생님을 만났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아이가 숙제를 다 하지 않았다는게 엄마는 많이 민망하셨던 것 같다. 저번주에도 다 하지 못하고 그 전전주에도 다 하지 못해서 결국 숙제를 감면 받는 과정이 나는 매우 기뻤던 것 같은데 엄마의 표정은 그렇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회초리를 옆에 두고 꿀밤을 맞아가며 선생님이 그나마 줄여주신 숙제라도 다 끝내자고 늦은 밤 나를 붙아둔 엄마를 속으로 9살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나쁜 표현을 써가며 욕하면서 꾸역꾸역 숙제를 마쳤던 기억이 많다. 다 풀고나선 "그거봐, 이렇게 잘 푸는데 그걸 왜 맨날 못하는거야!"하고 칭찬인지 핀잔인지 모를 말을 던지셨던 엄마도 기억이 난다.
A역시 마찬가지다. 공부 하는 시간을 7살때부터 루틴화 삼아서 이젠 하긴 싫어도 해야하는 것, 이라고 이해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과목에 비해서 수학 연산은 정말 하기 싫어한다.
A가 하는 수학 공부는 총 3가지.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한 교과서 위주의 학습지는 하루에 1장에서 2장 정도로 거의 학교 진도와 동일하다. 그래서 문제를 풀거나 공부를 할 때 그리 어렵지 않게 따라온다. 창의력을 위해 시작한 깨봉수학은 구구단을 넘어서 컴퍼스를 이용해 도형을 만들어보고 이해해가는 과정을 하는 중이다. 늘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수학을 풀어내는 깨봉수학의 방식은 호기심이 많고 재미있으면 몰입하기 쉬운 A에게 매우 잘 맞아서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나 연산문제집. 소마셈을 고작 B단계 2번째를 하고 있는데 B가 2학년 과정이지만 2번째 책은 거의 1학기 초반의 문제수준이나 다름없어서 2자리수의 덧셈과 뺄셈 부분이기 때문에 분명 어렵진 않은데 이걸 정말 풀기 싫어한다. 특히나 맨 뒤부분은 구몬처럼 연산만 한 바닥씩 풀어야하는거라 그 부분을 푸는 시기가 오면 하기 싫다고 몸을 배배 꼬고 짜증을 내기 일쑤라 공부시간이 늘 괴로워진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걸 좀 덜 힘들게 느끼게 만들까가 가장 큰 고민이다.
A는 수학의 의미를 깨치는 건 좋아하는데 단순 연산은 싫어한다. 하지만 연산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수학 실력이 좋아지긴 힘들다고 한다. 이런 지루한 연산문제를 조금이나마 즐겁게 풀 수 있게 만든 방법을 공유해본다.
ADHD아이가 지루한 연산문제집을 즐겁게 풀게 만드는 법 1. 게임으로 만들기
많이들 사용해보는 방법일꺼다. 이 정도의 문제를 몇 분 안에 풀 수 있어?라고 물어본 후 아이가 정한시간만큼 타이머를 설정한다. 보통 하루에 2장을 푸는데 이런 방식으로 문제풀기를 하면 보통 장 당 4~5분 정도가 소요되고 2장을 다 마무리하는데 10분이면 된다.
간식을 걸고 하거나 아이랑 같이 노는 걸 약속하거나 하는 방식을 사용해도 좋고 매일 시간을 단축하는 즐거움으로 게임화해도 좋다. 아이가 너무 힘들거나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
2. 한 문제씩 정답체크하기
아이 옆에 앉아서 한 문제씩 맞을 때마다 동그라미를 쳐준다. 동그라미를 계속 받고 싶어서 나름 집중을 잘 하게 된다. 나같은 경우는 빨간색연필을 들고 아이가 문제 풀 때 살짝, 압박감을 주는 편이다. "엄마 이제 동그라미 칠 시간이 된 것 같은데?" 하면서 아이를 압박하면 나와의 경쟁?처럼 느끼면서 문제에 몰입한다.
3. 문제가 조금씩 드러나게 만들기
ADHD아이들은 한꺼번에 많은 문제를 맞닥뜨리면 해결과제가 너무 많은 것에 압도당해서 손을 놓아버리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한 페이지의 문제가 너무 많이 쓰여진 경우 그래서 보통 짜증을 많이 낸다. 문제가 많을 때는 다른 종이나 노트 등으로 아랫부분을 가리게 하고 위의 4문제 정도만 노출시켜준다. 그러면 본인이 처리해야할 당장의 문제 들에 집중해서 어렵지 않게 문제풀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4. 쉬운 문제로 꼬시기
지금 하고 있는 소마셈 스텝도 2학년과정이지만 1학기 초반 문제이다. 보통 어려운 문제 앞에서는 아이가 주눅들고 공부 자체를 짜증내기 쉬운데 쉬운 문제 앞에서는 뭔가 자신만만해지지 않는가?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연산은 반복학습을 통해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이 주 목적이니 아이가 너무 어려운 문제로 스트레스 받게 만드는 것보다는 본인의 단계보다 살짝 아래의 문제를 통해 진입장벽은 낮추고 실력을 쌓을 수 있게 돕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게다가, 이렇게 쉬운 문제인데 못 풀겠다고? 하고 호들갑을 좀 떨어주면 아이가 알아서 달려들어 문제를 풀어내니 아이가 지금 연산문제에 너무 스트레스 받고 있다고 조금 단계를 낮춰주는 것을 추천한다.
5. 열심히 응원하기
나는 초등도 아닌 국민학교를 나왔다. 그때 나는 지금 A처럼 영어공부도 하지 않았고 국어독해문제집이나 창의력수학같은건 해본적도 없다. 그나마 시험기간에만 전과를 조금 펼쳐서 공부한 것이 전부이다. 9살에 이렇게나 열심히 공부를 해주고 있다는 게 정말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학년에 소마셈을 D단계까지 다 넘어간 친구도 있겠지만 우리아이는 ADHD가 있고 그걸 극복해가며 공부해내고 있는거니 더 응원받아 마땅하다.
아이가 공부를 하겠다고 앉는 순간부터, 멋지다. 바로 와서 공부하니 너무 기특하다. 매일 이렇게 하면 진짜 똑똑해지겠다! 등등 아이의 공부를 응원해주자. 왜 공부할 시간에 공부를 안 해! 학생이 공부하는게 당연하지, 이게 뭐 칭찬거리나 돼?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도 다 느낀다. 특히나 ADHD아이들은 본인이 잘하고 있는 것을 늘 칭찬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이니 아이가 책상에 스스로와 앉는 것부터 칭찬해보자. 책을 펼쳐서 스스로 문제를 풀려는 것도 기특하게 생각하자. 그런 엄마의 마음이 아이에게 분명히 닿을 것이다.
아이 공부시키는 게 제일 큰 일이다. 아직 자기주도학습습관을 가지기엔 어린 나이이고 ADHD아이들은 그걸 만드는 게 제일 어렵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동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몰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이와 공부만큼은 꾸준히, 루틴처럼 해야하고 늘 응원단처럼 아이의 노력에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한다. 공부를 잘 하던 못하던 공부를 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간들은 어떤 식으로든 아이의 인생에 좋은 밑거름이 된다.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걸 참아내는 연습이 누구보다 더 많이 필요한 ADHD아이를 키운다면 숙제를 마무리하고 지루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아이와 큰 트러블이 생겨나는 경우가 많아 공부는 조금 미뤄두자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적어도 학교 숙제는 마무리할 것, 하루에 몇 장이라고 규칙을 세워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는 매일 반복해 해내는 것은 아이가 세상에 나가 성인이 되어 사회의 일원이 된다면 매일 해내야 할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ADHD아이라서 그걸 봐주고 넘어가야되는 게 아니라 ADHD아이이기 때문에 그런 훈련이 더 필요하고 그걸 더 노력해서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가장 최종 목표는 아이를 자립된 어른으로 키워내는 것이다. ADHD아이의 양육목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야하는 일이라면 하기 싫은 것도 참고 해내도록 가르쳐야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회사에 들어가든, 군대를 가든, 개인 사업을 하든 자신의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과정이 어려운 것이지 힘드니까 안하고 넘어가도 되는 것이 아니다. 과정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통해 아이을 어른으로 키워내자.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매일 매일이 도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린 부모니까, 감당해내야 한다. 억울하다고? 그럼 그걸 배우지 못하고 자라나 세상에서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해내지 못해 늘 좌절에 빠질 지 모르는 당신의 아이는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러니 힘을 내자. 무너지지 말고, 다시 한번 힘을 내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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