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아이를 키우며 제일 힘든 점은 내가 이렇게 부모로써 부족한가? 하는 자괴감을 아이를 키우는 모든날, 모든 순간 느끼게 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이지만 ADHD 특유의 부주의함과 정신없음, 그리고 미친 듯한 충동성에 시달리다보면 내 아이지만 미칠듯이 밉고 머리로는 아이의 증상을 이해하지만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오르고 감정을 주체하기 너무 어려워진다.
이를 위해 부모교육이나 상담 등을 통해 아이의 증상을 이해하고 조금 더 너그럽게 아이를 키우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읽어보지만 사실 "선생님? 혹시 ADHD아이를 직접 키워보긴 하셨나요? 매일 이 요구와 요청, 이 정신없음을 실제로 경험해보시고 조언하시는 거 맞나요? 그거 아니면 한 마디도 하지 마세요!!"하고 쏴 붙여주고 싶어지는 게 사실이다. 조선미교수님이나 오은영박사님이 오신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아이를 잘 키워야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렇게 난리치고 요동치는 우리의 감정이 ADHD아이가 자신의 증상을 관리하고 바람직한 어른으로 자라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걸, 아니 오히려 아이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꺼라는 걸 안다.
오늘, 아이에게 화를 내고 엄마자격, 부모자격이 있는 지 반문하며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면 그러지 말자. ADHD 아이, 1명을 키우는 건 평범한 아이 10명을 키우는 것 만큼 힘들다고 한다. 우리는 아이 10명을 감당해내고 있는 중이라는 걸 기억하자. 힘든건 당연한거다.
다만 조금 덜 힘들 방법을 찾아보자. 적어도 아이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엄마도 아이도 조금은 덜 힘들고 그래도 오늘 하루는 나름 즐겁고 행복했다라고 자기 전에 고개를 끄덕일만한 수준으로 하루를 보내는 방법을 배워보고 실행해보자.
ADHD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방법 1. 약물치료가 먼저다.
ADHD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 위한 기본 항목이 분명히 존재한다. 둘 중 하나를 고르면 되는데 첫째는 무한하게 너그러운 엄마의 마음씨이고 둘째는 약물치료다.
정말 아이의 모든 ADHD증상을 너그럽고 넓은 마음으로 무한하게 받아주고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약물치료를 반드시 시작하라는 거다.
약물치료를 하더라도 약물효과가 없는 오전 시간과 약물효과가 소거되는 오후 시간에는 다시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꼴이 되더라도 약물치료는 치료 중의 가장 기본이며 아이에게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경을 제공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똑같은 지시를 하더라도 엄마와 아이 모두 써야할 에너지를 확실히 줄일 수 있다.
2. 잘 자고 컨디션 유지하기
사실 엄마나 주양육자의 컨디션이 ADHD 양육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한다. 짜증나는 행동을 똑같이 하더라도 밤에 7시간을 잔 상태에서 받아주는 것과 5시간을 잔 상태에서 받아주는 것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생리전후라거나 폐경이행기 등 호르몬에 의해 몸 상태가 흔들릴때에도 아이의 ADHD증상을 받아주는 것이 조금 더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나같은 경우는 첫째가 ADHD진단을 받았을 때가 둘째가 두돌을 살짝 지난 시기+가정보육 시기여서 스트레스가 매우 극에 달한 상태였고 내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아이에게 더 날카로워지는 상황이 늘 반복되었다. 둘째가 좀 자라고 밤에 잠을 규칙적으로 자는 시기가 오니 나 역시 컨디션이 좀 나아져서 그 전보다는 더 나은 컨디션으로 아이의 증상을 받아줄 수 있다.
워킹맘이거나 나처럼 터울이 있는 형제나 자매 등을 케어해야하거나 다른 집안의 어려움 등이 있어 컨디션 조절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아이와 붙어있는 물리적인 시간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 된다.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서 1시간이나 2시간 정도만 힘을 내는 것과 하루종일 이미 낮아진 에너지를 계속 억지로 끌어올리며 아이를 케어하는 것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늘 정답은 첫번째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잠은 7시간 이상 자려고 노력하고 평소에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해볼 것을 적극 권장한다. 나름의 도피처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는 나의 마음과 몸을 소중히 여겨주어야 아이를 또 소중히 키워낼 힘이 생겨난다.
3. 우선순위 정하기
아이와 보내는 하루의 시간 중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되는 대부분의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대부분 나의 요청이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 때일 것이다. 먹은 그릇 치워, 벗은 옷 빨래통에 넣어, 읽은 책은 책장에 꽂아, 학교 다녀오면 책가방은 제대리에 둬 등등 그 나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을 꺼라고 생각하는 일 들을 하나하나 지시하지 않으면 스스로 해내지 못하고 한 번의 지시로는 아이가 순순히 그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 ADHD아이들 대부분이 공유하는 문제점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약물의 효과가 있는 시간이라면 스스로 하는 일 들이 늘어나겠지만 오전시간이나 늦은 오후시간에는 이런 사소한 지시들을 수행하지 않았을 때 엄마나 주양육자의 감정이 요동치는 경우가 많다.
이럴때는 우선순위를 생각해서 과감하게 불필요한 지시사항 들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는 대범함이 필요하다. 아이가 등교할 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그 부분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세수와 양치, 그리고 준비물챙기기, 지각하지 않기, 아침식사하기 등이 우선순위에 오를 것이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즐겁게 학교를 가게 만들기라는 최우선 목표를 두고 나머지 우선순위를 정한 후 그것들을 시간 내에 수행하도록만 유도한다. 밥먹다가 흘리거나, 동생과 장난을 치거나, 벗은 옷을 손에 쥐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침대에 던져놓을 때 분명 우리는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최우선목표인 혼내지 않고 즐거운 기분으로 등교시키기라는 목표 하에 우선순위인 아침식사와 세수, 양치, 준비물챙기기, 지각하지 않기를 해낼 수 있다면 어느정도의 정신없음과 지저분함은 우선은 좀 덮어두고 대신 해주자.
시간 여유가 생긴다면 오늘은 벗은 옷을 빨래통에 넣는것까지 시도해보고 다음날, 그 다음날까지 꾸준히 시도하면서 칭찬으로 아이의 행동을 보상해주면서 루틴화 하여서 의식하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천천히 확장하자.
어른들도 정신없이 바쁜 날엔 벚은 옷 정도는 화장실 앞에 두고 가거나, 화장품을 거울 앞에 늘어놓고 출근할 수 있다. 우리 아이는 아직 아이고 ADHD라는 증상때문에 완벽하게 정리하기 어려워한다는 걸 기억하자. 우선순위에 놓인 일은 무조건 해야하는 일이니 놓치지 않게 관리해주고 그 외에 하면 좋은 일들은 해주면 칭찬, 못하면 아직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생각하자. 적어도 이러면 아이때문에 화가 나지는 않는다.
4. 내 아이 나이 X 0.7을 기억하자
사실 9살이면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인데 그걸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잔소리가 늘어나고 화가 더 많이 나고 짜증을 참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보통 ADHD아이들은 자기 나이보다 2~3살 정도 전두엽발달이 늦다고 한다. 그냥 0.7정도 곱해주면 대략적인 수행나이정도라고 기대할 수 있다는데 그렇다면 A는 현재 6.3살에 해당한다.
6.3살이라고 A를 바라보면 그래, 6살 정도라면 정리도 꽤 잘하고 동생과도 싸우긴 하지만 그정도면 잘 놀아주고, 밥도 흘리긴 하지만 잘 먹는 편이다. 공부는 더할나위없이 잘하는거지. 초등학교에 다니고 한글도 알고 받아쓰기도 100점을 받아오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 6살이 뭐 사고 싶다고 징징댈 수 있지, 그래 6살이면 공부하기 싫다고 그럴 수 있지 하고 말이다.
현실로 돌아와서 9살인데 6살이라고 그냥 봐줘도 돼? 하고 걱정하다가도 약물치료를 하고 있고 학교에 가 있거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땐 약물의 효과로 9살의 행동과 태도를 보여주니 집에서는 6살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챙겨주자 싶어진다.
그러니 꼭 1번인 약물치료는 필수다. 6살인 아이가 9살 아이들과 학교를 다닌다고 생각해보라.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 친구들 눈에는 얼마나 어려보일까? 얼마나 감정조절이 어려울까? 그렇다면 친구들이 같이 놀고 싶어질까? 약물치료면 그 걱정은 절반이하로 줄일 수 있지 않은가.
5. 아이에게 주도권 주기
가장 어렵지만 먹히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보통은 바쁜 오전 시간보다는 약물효과가 떨어진 저녁시간에 시도하면 더 드라마틱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ADHD아이의 특성상 정리정돈이 어렵고 놀고 있는 상황을 정리하고 자기위한 준비로 넘어가기가 늘 힘든데 이럴때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면 조금 쉬워진다. 예를 들면 자기 방에 다양한 장난감 들을 잔뜩 어지른 채 거실까지 장난감을 다 펼쳐놓고 놀다가 책을 꺼내 읽고 있는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는 것이다.
엄마: 방이랑 거실을 자기전에는 치워야할 것 같은데, 언제쯤 치울래? 8시 30분까진 다 해야 되는 건 알지?
(우리집은 공식적으로 8시 30분까진 샤워, 양치, 정리를 모두 마치고 책을 읽기 시작하게 되어 있다.)
A: 음 8시에 치울께요.
엄마: 혹시 니 방을 직접 보고 시간을 말하는 걸까? 8시에 나머지를 다 할 수 있을 지 방을 보고 나서
한 번 생각해보고 말해줄래?
A: (방에 다녀온 뒤)아 8시는 어렵겠다. 그럼 7시 50분에 치우기 시작할께요.
엄마: 그래, 그럼 엄마가 7시 50분에 시간됐다고 말해줄께.
온 집안이 엉망이었지만 아이가 스스로 한 약속을 믿고 7시 50분까지 기다린 뒤 시간이 되었다고 말했다. 아이는 스스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서 거실의 장난감을 다 정리한 후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 나머지 정리를 했다. 내가 가서 몇 가지 위험한 것 들을 먼저 치울 것을 이야기 해준 것과 바닥의 작은 쓰레기 들을 주운 것 외에는 혼자 책과 장난감, 그리고 자기 서랍에 스스로 정리하기로 한 세탁된 옷 들까지 다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중간중간 잔소리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아이가 스스로 정한 시간까지 기다렸고 아이가 제대로 못 치우는 부분에 대해 잔소리 하지 않고 옆에서 더 나은 방법을 조언만 해줬으며 아이가 미처 보지 못한 작은 부분은 내가 정리해주긴 했지만 우리는 서로 짜증도 내지 않았고 화도 내지 않은 채 즐겁게 저녁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1번부터 5번까지 중에 엄마입장에서 가장 하기 쉬운 방법은 물론 1번 약물치료다. 약물치료가 담보로 되어 있어야 나머지 2번에서 5번까지도 효과가 있다. 약물치료를 하면서 아이의 어려움을 보조해주고 그동안 엄마의 컨디션을 올려놓고 아이나이 곱하기 0.7을 해서 아이에 대한 눈높이를 낮춘 후 우선순위에 맞춰 아이를 대해주고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기 시작하면 ADHD아이를 키우면서 보내는 하루도 조금은 즐겁고 행복하고 덜 버거워질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이 더 빨라진다고 한다. 20대는 20키로의 속도로, 40대는 40키로의 속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의 하루는 우리보다 더 느리게 모든 순간순간 꾹꾹 눌러쓴 일기장만큼 더 많이 기억되고 기록되고 있을 것이다. ADHD아이들도 하루를 행복하고 즐겁게 보낼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우리, 주 양육자다.
왜 아이 하나 키우는데 이렇게 힘드냐고 물어보지만 다른 아이가 아니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 아이니까 어쩔 수 없다. 아이에게도 늘 이야기하지만 내가 뭘 바꿀 수 없는 일이고 그냥 해야하는 일이면 "어쩔 수 없지 뭐" 모드를 켜야한다고 말한다.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내 아이를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더 잘 자고 잘 쉬고 내 아이의 한계는 인정하고 내 아이의 특별함은 키워주자. 해보자. 할 수 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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