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담임선생님께 하이톡을 받았다. A가 빗자루를 잃어버린 지 꽤 되었는데 아직 새 빗자루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문자였다. 여러번 말 했는데도 아직 챙겨오지 않은거 보면 A가 잊은것 같다는 말씀. 아이가 ADHD란 사실을 담임선생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배려였다. 내게 빗자루를 챙겨가야한다고 말했었는데 꺼내줄께, 해 놓고 나도 잊었고 아이도 그 뒤로 요청하지 않은 덕에 결국 선생님이 참다못해 말씀하신거였다.
A는 잘 잊어버린다. 오늘도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내려놓고 놀았고 결국 아이가 학원 간 사이에 다 녹은 아이스크림을 발견해서 치웠다. 영어수업 교재를 책가방에 챙겨두라는 나의 말에 2권 중 한 권은 이미 진도가 끝낸 책을 챙겨갔고 내가 미리 말해두지 않으면 방과후 수업에 꼭 필요한 배드민턴을 아침에 챙겨가지 않는다. 그나마 약물효과가 있는 시간에는 기억을 좀 하는 편이지만 오전 시간과 약물효과가 소거된 시간에는 방금 말했던 것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아이가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매일, 매순간 반복되는 아이의 무신경함에 늘 답답하고 지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탓만 하기 어려운 것이 나 역시 비슷한 일을 매일 반복한다. 위의 빗자루 문제만 해도 이야기를 듣고 꺼내줘야지 하는 순간 아이가 컵을 엎질렀고 그걸 정리하려다 완전히 망각했고 빨래를 하러 가다가 바닥에 떨어진 장난감을 발견하면 그걸 정리하느라 빨래바구니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일이 많다.
A나이 였을 때의 나도 쉽게 하던 일에서 다른 일이 끼어들면 원래 하던 일을 까먹었던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어린시절이라 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인지 적어도 중요한 일을 할때는 다른 일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원래 하던 일을 유지하려는 강박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업무 중에는 아이들의 작은 요청들은 무시하거나 조금 있다가 부탁하라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재택근무 중이고 아이디어가 중요한 직업이라 생각난 아이디어를 정리하다가 아이들의 부탁을 들어주면 그 아이디어가 사라져버려서 정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져서 아이들에게 늘 "엄마가 일 할땐 좀 기다려줘"라고 늘 이야기하게 된다.
또한 아이들의 준비물을 챙기거나 인터넷으로 찾아서 주문하거나 할 때도 무조건 그걸 먼저 해결하려는 편이다. 잠깐 있다가 하고 이것부터 해주면 안돼? 라는 남편의 부탁이 늘 있지만 그러고 나면 주문해야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었다가 낭패를 본 일들이 많기 때문에 필요한 걸 해결할 때는 무조건 그걸 먼저 해결하고 다음일을 하려고 한다.
ADHD는 왜 이런걸까? 왜 이런 잦은 건망증으로 주변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늘 지적의 대상이 되는 건지 알아보자.
새로운 일이 생기면 하던 일을 잊어버리는 ADHD 1. 이유가 뭘까?
늘 말하지만 ADHD가 있는 사람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나름의 이유가 다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낮은 작업기억때문이다. 작업기억이란 컴퓨터로 따지면 메모리 같은 것인데 짧은 기간 동안의 정보를 기억하고 처리하는데 필요한 능력이다. ADHD가 있으면 이 작업기억의 용량이 매우 작아지는데 그래서 새로운 일이 생겨나면 기존에 하던 일에 대한 정보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일이 입력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치 리셋되듯이 원래 하던 일을 잊고 새로운 일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간혹 작업기억이 나쁘지 않은 ADHD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전전두엽이 아닌 두뇌의 다른 부분을 활용할 수 있는 경우라고 한다.
둘째는 작업전환이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이 더 주의가 필요한 일이거나 흥미로운 일, 더 급한 일일때는 그 일에 몰입을 하게 되고 원래 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어려워진다.
셋째는 산만함과 과몰입때문이다. ADHD가 있으면 주의력이 낮아 산만하기 쉽다. 이런 산만함때문에 새로운 일이 개입되면 그쪽에 주의력을 뺏기기가 쉽다. 또 과몰입이 있어서 이미 새로운 일에 몰입되어버리면 기존의 일을 완전히 망각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겨난다.
넷째는 관심도때문이다. ADHD는 보통 흥미로운 일에 관심을 급격히 보이고 빠져드는 경우가 많은데 기존에 하던 일보다 새로운일이 기존의 작업 대비 더 관심도가 높고 보상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면 새로운 일로 관심이 집중되고 기존의 작업으로 돌아오기 어려워진다.
2. 방지전략
새로운 일이 생기면 기존 일을 잊어버리는 경우, 개인적인 일이라면 대부분의 일들은 가벼운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지만 업무와 관련되어 있거나 육아나 일부 살림과 관련된 일이라면 자칫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동료에게 피해를 주거나,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집이 화재에 휩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해볼 수 있다.
첫째, 외부 알림을 사용한다. 알람, 타이머, 메모장, 알림앱 등 본인에게 잘 맞는 다양한 도구를 적극 활용하여 잊지 말아야할 것들을 잊지 않도록 챙긴다.
둘째, 작업 목록을 단계별로 정리한다. 업무나 집안 일 등 매일 반복되거나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들은 처리방법과 순서를 작은 단위로 나눠 목록화한다. 예를 들어 오전에 일어나 아이들의 등교를 챙겨야하는 상황이라면 필요한 목록을 한꺼번에 적어보고 이를 작은 단위로 나눠서 순서를 만드는 것이다. 해야할 일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재배열하고 세분화하는 것이다.
셋째, 최대한 루틴화한다. 위의 작업목록을 시간순서로 재배열하고 세분화했다면 주기적으로 해야하는 일들과 매일 해야하는 일들의 경우에는 최대한 루틴화하면 놓친 것들을 기억해내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루틴을 다 소화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중간중간마다 가져주는데 실수를 더 줄이는 방법이다.
넷째, 시각적 보조도구를 활용하라. 화이트보드에 하루의 일정을 정리해서 써놓는다거나 처리해야할 일을 포스트잇에 적어놓고 해결할 때마다 하나씩 포스티잇을 제거한다는 등의 다양한 시각적 보조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다섯째, 한 번에 하나씩 해결하라. 새로운 일이 끼어들어서 원래하던 일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면 우선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다음 일로 넘어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ADHD에게 멀티태스킹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한 번에 하나씩 일을 처리하고 다음일로 넘어가야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여섯째, 우선 순위를 정하고 머리속으로 떠올리자. 일을 처리하던 중에 급히 처리해야할 새로운 일이 있다면 우선순위를 잠깐이라도 따져보는 시간을 가지면 원래 일로 돌아오기 쉬워진다. 이 일을 처리하고 다음에 해야할 순서를 늘 되뇌이는 연습을 하면 하던 일을 잊는 문제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3. 부모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아이가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는 걸 늘 기억하자. ADHD는 아이의 우선순위를 선별하는 능력과 방금 전에 했던 일을 기억해내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하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짓지 않고 새로운 일로 넘어가는 거라는 걸 잊지 말자.
혼내고 잔소리하는 것으로는 아이의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약물치료를 하고 약물의 효과가 있는 시간 동안 위의 전략들을 통해 연습을 하고 약물이 없는 시간에는 조금 너그러운 마음으로 조력자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아이 스스로 일의 우선순위를 잊지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게 돕는 방법이 될 것이다.
놀던 장난감을 늘 치우지 않고 새로운 장난감을 꺼내서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도 같은 선상에서 일어나는 문제인 것 같다. 아이는 잊은 것이지 일부러 치우지 않는 것이 아니란 걸 쉽게 잊는다.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양육자가 ADHD가 있는 아이를 더 바른 방식으로 키워낼 수 있다는 걸 늘 느낀다. ADHD가 있는 엄마인 나는 그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입으로는 잔소리를 내뱉고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길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결국 아이와 하고 싶은 것은 아이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잘 꾸려가는 것이니까 매일 조금씩 노력해본다. 느리지만 바르게, 구불구불 돌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엔 가야할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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