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은 A가 방과후 영어수업을 듣는 날이다. 방과후 영어수업에는 늘 숙제가 있는데 A는 늘 이 숙제를 하기 싫어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오전에 등교 전 수학인터넷 강의, 하교 후 영어 인터넷강의 및 학교 진도, 파닉스, 문해력, 연산 등의 문제집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인강은 각각 15분 남짓, 나머지 문제집들은 한 두 페이지에 불과한 것들이지만.)
보통은 금요일은 4교시 밖에 수업을 하지 않으니 그때 여유시간을 활용해서 숙제를 하자고 제안해보는데 늘 저항이 만만치 않다. 내 숙제니? 이건 해야되는 거잖아. 그래서 안 해 갈꺼야? 너도 해야 편하잖니? 온갖 멘트로 아이를 압박해야 그나마 숙제를 시작하는데 한 글자 쓸때마다 하기 싫어를 반복해서 엄마의 복장을 터뜨린다.
방학에도 방과후수업은 이어졌는데 저번주와 이번주는 날도 덥고 나도 스케쥴이 많아 정신이 없어서 저번주는 월요일 밤 자기 직전인 9시에, 이번주는 화요일인 오늘 아침에 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정말 요샌 내가 문제다.)
어쩌겠는가, 숙제를 안하고 보낼 순 없으니 아이를 닥달해서 앉히고 숙제를 해야한다고 시간이 없다고 부랴부랴 연필을 손에 쥐어주고 숙제를 시켰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평소에 미리 숙제를 하자라는 의도로 영어숙제를 할 때는 영어책 읽기 4페이지(페이지당 4줄 정도), 워크북 8페이지, 단어 읽기 9개 정도를 20분동안 짜증과 한숨, 하기 싫다는 이야기를 귀에 피가 나도록 들으면서 겨우겨우 했었는데 저번주와 이번주는 정말 10분도 안 걸렸고 짜증과 한숨따위는 없었다.
마치 질주하는 말처럼 초집중모드로 숙제를 해결하는 A는 보며,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매일매일 아이와 공부루틴을 만들기 위해 아이를 얼르고 달래고 화를 꾹꾹 참으며 고생했던 나의 모습이 주마등이처럼 지나가면서 헛짓을 해온건가? 싶어졌다.
그런데 우리 A말고도 많은 ADHD를 가진 아이들과 성인들은 이런식의 벼락치기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 더 높은 효율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 역시도 ADHD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 그대로 고3 여름방학 전까지는 탱자탱자 놀다가 그때 정신을 차려서 막판 스퍼트를 엄청 올려 수능점수가 확 좋아졌던 경험이 있다. 물론 수학은 따라잡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말이다.
ADHD아이들에게 벼락치기 공부하는게 때로 더 좋은 효과를 얻게 되는 지 궁금해져서 알아보기로 한다.
ADHD아이에게 때론 벼락치기 공부가 더 효과적인 이유 1. 긴박감과 집중력의 증가
ADHD가 있는 아이들은 지루하다고 느끼거나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장기간의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평소에 하는 매일매일의 공부처럼 그 결과가 눈에 딱히 보이지 않고 단순 연산처럼 지루한 공부는 특히나 더 힘들어하는 편이다.
하지만 시험이나 데드라인 등이 정해져있어서 특정 성과를 이뤄야하는 경우 여기서 오는 압박감과 긴박감은 집중력을 높여주는 데 도움이 되는 아드레날린을 분출시켜 짧은 순간동안 몰입감을 증가시킨다. 이를 통해 매일 반복하는 공부보다 때론 벼락치기하는 공부에서 더 좋은 효과를 얻는 경우가 있다.
2. 작업 기억 활성화
많은 ADHD 아이들이 지능과 상관없이 종종 작업 기업의 어려움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작업 기억이란 짧은 시간동안 정보를 보유하고 조작하는 능력인데 ADHD의 낮은 주의 집중력이 이 부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벼락치기로 공부를 할 때는 작업기억에 크게 의존하는 집중적이고 단기적인 공부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이때 가벼운 스트레스 반응을 통해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일시적으로 분출되어 ADHD가 있는 아이들이 평소 학습 기간 동안 겪는 집중력 문제를 일시적으로 극복하게 해준다. 이 부분에서 작업기억 역시 활성화되면서 단기적인 학습내용에 대한 처리가 더 수월해지고 이를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3. 과제 관련성과 동기부여
ADHD가 있는 아이들은 즉각적이며 확실한 보상이 있는 과제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자신이 하는 공부가 당장의 관련성을 가질 때 더 몰입하기 쉬워한다. 시험 직전에 벼락치기를 하게 되면 학습 내용이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높은 관련성을 통해 더 잘 몰입하며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다는 보상이 확실히 느껴지기 때문에 ADHD아이는 더 강력한 동기를 가질 수 있다.
이런 강력한 동기부여 자체가 아이의 몰입을 또 돕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성과를 내게 되는 것이다.
4. 미루는 성향 극복
많은 ADHD아이들이 자신이 해야할 일은 미루는 성향이 있다. 주의력 부족과 부족한 시간 개념 등으로 실행기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 계획을 세우고 이를 지키거나 과제를 수행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벼락치기 공부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의 노력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 미루는 성향을 극복해낼 수 있다.
5. 분산 최소화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긴박감은 때론 ADHD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낮은 주의력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 보통 ADHD아이들이 공부할 땐 공부 이외의 다른 요소들에 주의력을 뺏겨서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인식은 아이가 공부에만 주의를 기울이도록 도울 수 있다.
목표가 확실하고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상황은 아이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요소들을 차단하게 만들고 아이가 필요한 주의력을 공부하는데만 집중 시킬 수 있게 만들어줘 더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다.
5. 벼락치기가 반복되면 일어나는 일들
ADHD아이들이 평소보다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벼락치기공부를 그럼에도 반복하지는 말아야할 확실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이런 벼락치기공부가 반복됨에 따라 아이의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번아웃이 오거나 정보유지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반복된 루틴이 일상생활을 편안하게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ADHD아이들에게 이런 예상이 불가능하고 간헐적인 공부방식은 한 두번의 높은 성과를 낼 뿐, 장기적으로는 아이의 공부습관이나 태도를 형성하는데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이의 공부는 적어도 고등학교까지 12년간 이어진다. 그러므로 단기적인 효과에 혹하기보다는 아이의 필요에 맞춘 일관된 학습습관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는 더 나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말 놀라운 집중력으로 숙제를 해결하는 모습만 보면 방과후과제는 매일 수업 직접에 시키고 싶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본인이 챙겨야하는 스케쥴을 등한시하거나 해야할 일을 다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라는 내가 가르치고 싶은 궁긍적인 목표를 가르치는데엔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다.
A의 스케쥴들이 복잡해지고 동생인 C의 스케쥴들도 생겨나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아이의 스케쥴까지 일일히 체크하는 게 점점 버거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3학년쯤 되면 자기가 할 일은 잘 챙겨서 하지 않을까? 싶지만 6학년인데도 일일히 챙겨줘야하는 조카를 보면 여전히 나의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것을 잘 정리하면서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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