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에 비해 2학년은 학기초부터 공부량도 늘고 시험도 잦다. 2학년이 되고 1달동안 아이가 본 시험은 2개. 한 번은 받아쓰기 급수표를 연습하고 가서 봤고 다른 한 번은 수학 1단원이 끝나고 본 시험이다. 두 시험의 성적은 모두 70점.
남편도 나도 초등학교시절에는 받아쓰기는 당연히 올백이었고 수학 역시 남편은 늘 백점, 나는 간혹 가다 한 개? 두 개? 정도를 틀렸던 것 같다. 그래도 한 번도 70점은 받아온 적이 없었다.
얼마전 진료로 아이가 난독이 살짝 있다는 것도 확인 받았고 그 덕에 띄어쓰기나 맞춤법을 제대로 익히는 부분을 어려워하고 긴 문장으로 된 질문 앞에서 포기하거나 제대로 읽지 않는 식의 문제점이 늘 있긴 했지만 1학년때는 그래도 100점이나 1개정도만 틀려왔던 수준이라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이가 틀린 문제를 확인해보니 아이의 어려움이 눈에 보였다. 받아쓰기의 경우 띄어쓰기를 실수 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수학시험의 경우 개념은 확실히 알고 있는데 문제를 해석하는데 오류를 범해서 틀린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1학년때는 더 나은 성적이었던 것 같아서 어떤 부분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지 고민해봤다. 아무래도 약을 바꾼 탓이 아닐까 싶어졌다. 메디키넷20을 먹던 1학년때는 오전 수업할 땐 약효가 충분해서 긴장을 하긴 했어도 문제를 읽고 풀때 필요한 집중력은 충분했던 것 같다. 콘서타18과 페니드 5를 복용 중인 지금 2학년때는 아무래도 오전 수업 시간에는 작년 메디키넷20을 먹던 것보다는 집중력이 약할 것 같다. 주말에 콘서타18과 페니드5를 먹였을 때와 메디키넷20을 먹었을 때를 비교해보면 아이의 집중력 차이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콘서타로 변경하고 아이의 긴장도도 완화되고 좀 더 밝은 느낌이라 참 마음에 들었는데 확실히 학습에서 이렇게 아쉬움이 생기니 고민이 다시 시작된다. 3개월치를 받아온 상태라 1학기는 이렇게 보내게 될 것 같은데.. 2학년 1학기 성적은 포기해야하는 건가..
나 역시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에는 시험을 보면 늘 질문을 잘 못 읽어서 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닌 것을 골라야 하는데 옳은 것을 고르고 정답을 모두 골라야 하는데 보이는 거 하나만 골랐다. 그런 성적표를 들고 온 날에는 늘 엄마께 엄청나게 많이 혼났다. 아는 걸 왜 틀리냐고 호되게 나무라셨던 기억이 굉장히 선명하다.
그 기억을 되짚어보면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 그런 엄마의 태도가 나의 공부에 도움이 되었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확실히 대답할 수 있다. 그냥 나도 실수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 성적이 너무 속상한데 엄마는 결과만 보고 나의 부족함이라고 생각하셔서 나름 억울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부주의한 나를 닮은데다 가벼운 난독까지 있는 A에게 나 같은 억울한 기분을 가지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성적표를 보는 순간 화가 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내 자식이 70점이라니, 하고 표정관리가 안되었지만 간신히 모든 마음을 참아내고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70점이니까 앞으로 열심히해서 올라갈 수 있어서 좋다. 처음부터 100점이면 하나 틀리면 성적이 떨어지는 건데 A는 조금더 노력해서 한 개만 더 맞아도 80점이니까 성적이 오른거잖아! 우리 틀린 건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다음부턴 틀리지 않도록 해보자. 확인해보니까 문제를 제대로 읽지 않아서 틀린 거네? 그럼 우리 앞으로 문제 읽을 때 중요한 내용은 표시해가면서 좀 더 집중하고 문제를 풀어보자. 그럼 다음엔 더 좋은 점수가 나올꺼야!"
A는 더 잘하고 싶어한다. 본인이 생각해도 지금 성적은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그래서 더 노력할꺼라고 했다. A가 가진 진짜 실력보다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건 나 역시 ADHD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ADHD탓을 하는 건 A의 내일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의 ADHD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약을 먹이는 중이고 다음번 진료까진 지금보다 더 잘 관리할 수 있는 용량을 찾긴 어려우니 A 스스로 문제 앞에서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나와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밖에 없다.
나와 공부하는 시간동안 문제를 더 꼼꼼히 읽는 연습을 하고 문제의 중요한 내용을 파악해서 표시하고 아는 문제더라도 한번은 더 생각해보고 어려운 문제라고 늘 막막해하는 긴 서술형 문제 앞에서는 크게 심호흡을 서너번 하고 문제를 읽어보자고 매일매일 연습하고 노력해볼 것이다.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다음 시험엔 하나쯤은 더 맞고 그 다음 시험엔 아는 것은 다 맞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문제 앞이라도 자신있게 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ADHD를 키우는 엄마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모든 문제를 ADHD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것도 성적이 좋지 않은 것도 친구들과 트러블이 있는 것도 모두 ADHD탓으로 돌리면 참 편해진다. 그리고 그러면 문제가 더 쉽게 해결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ADHD로 모든 문제의 화살을 돌리면 엄마의 마음은 편해질 수 있지만 아이의 더 나은 내일과는 멀어질 수 있다. ADHD를 약물로 관리하더라도 관리하는 시간동안 아이가 더 나은 삶의 방식과 바른 습관을 익히도록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아이는 평생 ADHD라는 꼬리표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10살까지만, 12살까지만, 중학교까지만, 고등학교까지만, 대학갈 때까지만 키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ADHD를 잘 관리해서 평생 잘 살아가게 하는 것. 우리의 최종목표는 바로 그것이다.
아이가 ADHD에 끌려다니게 하지 말자. ADHD의 고삐를 꽉 쥐고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조절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자. 거친 야생마도 잘 길들이면 먼 길을 달릴 때 폭발적인 속도로 남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다. ADHD의 하이퍼포커스를 잘 활용해서 자신의 재능을 폭발시키고 평소에는 ADHD의 고삐를 꽉 쥐어서 일상에선 너무 힘들지 않게 지내게 하자.
오늘의 70점에 일희일비 하지 말자. 아이가 자기만의 백점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연습하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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