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A의 담임선생님께 문자가 왔다. 잠시 A에 대한 전화상담을 요청하고 싶은데 시간이 가능하냐는 내용이었다. 오늘은 A의 놀이치료와 사회성치료가 있는 날, 이왕 통화를 할꺼면 놀이치료 시간 전에 상담을 하고 혹시나 문제가 있으면 놀이치료선생님과 상의 할 생각을 하고 오후 일찍 통화 시간을 잡았다.
오전부터 전화가 올 시간 전까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입안이 말라왔다. 선생님들은 좋은 소식을 위해 전화하시는 일은 많이 없으니까. 1학기때도 아이가 친구들과 트러블이 있을 때 전화를 종종 받았고 전학와서도 한 번 친구가 계속 방해하는 것을 참지 못한 A가 친구를 때려서 서로 치고 받은 바람에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또 무슨일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많이 좋아진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업시간에 원하는 방향으로 그림을 완성하지 못해서 활동지를 다시 요청했다가 선생님이 거절하자 선생님께 짜증을 내서 혼났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지우개를 잃어버려서 수업에 집중을 못했다고도 이야기해 준 적이 있어서 아이가 내게 말하지 않은 다른 문제들이나 사건들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기다리던 중 드디어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생각보다 밝은 목소리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선생님은 A가 수업시간에 참여도도 제일 높고 가장 열심히하는 훌륭한 학생이라고 무척 아낀다고 해주셨다. 아이가 밝고 긍정적이고 에너지도 높아서 본인도 수업할 때 아이에게 자극을 받기도 하고 같은 반 아이들도 A의 말에 몰랐던 걸 깨닫기도 하는 등 참 고마운역할을 해준다고 하셨다.
다만 아이가 뭔가 좌절되는 상황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화를 조금 더 많이 크게 내는 편이고 그 이후에 불편한 감정을 쉽게 해소하지 못하는 모습 들이 종종 보인다고 하셨다. 학기 초에는 이런 행동들이 좀 자주 나타나서 당황한 경우도 좀 있었고 지금은 많이 줄어들어서 그 빈도는 적어졌지만 여전히 불편한 감정이 생겼을 때 아이가 하는 표현이나 행동들이 오래 이어질 때가 있어서 아이가 혹시나 마음이 어려운 일이 있거나 학교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어서 전화를 주셨다고 했다.
아이가 그런 행동을 보였을 때를 여쭤보니 원래 A의 트리거가 되는 상황들이었다. 수업시간에 수업을 방해하는 친구에게 화를 내거나(선생님이 제지해야하는 상황인데 본인이 나서서 조용히 시키려고 하는 상황) 수업 시간에 필요한 준비물(지우개)를 쉬는 시간에 잃어버려 찾다가 결국 못 찾았다거나 자신은 차분히 앉아서 종이접기나 책을 읽고 싶은데 주변 친구들이 그것을 방해하는 경우 이렇게 3가지였다.
아이가 동일한 조건에서 계속 아이가 감정조절을 조금 어려워하고 있고 그것이 아이의 트리거라는 것을 선생님께 해명해야할 필요가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도 아이의 감정조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런 특정 상황에서 아이가 감정조절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와 1년 가까이 놀이치료를 하고 있다는 말을 꺼냈다.
선생님은 매우 놀라시면서 그냥 조금 화를 잘 못 참는 정도라고 하셨다. 그리고 2학기 시작보다는 훨씬 좋아졌다고도 하셨다. 다만 아이가 너무 공부도 열심히하는 좋은 학생이라 도움을 주고 싶어 전화를 한 것이라고. ADHD라는 말을 하지 않고 아이가 7세때부터 화가 나면 좀 행동이나 말이 과격해지고 그걸 쉽게 진정하는 방법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것 같아서 놀이치료를 하고 있고 1년간의 치료를 통해 많이 나아지는 중이라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아이를 계속 지켜본 결과 그런 문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는 한정적이며 그 부분만 피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도 말씀드렸다. 선생님 역할을 대신하려고 할 때는 선생님이 하겠다고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해드리기를 부탁드렸고 준비물 등을 분실해서 본인이 예상한 결과를 벗어날 때는 '어쩔 수 없지 뭐,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보자"고 말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는 걸 집에서도 교육중이니 이 방식을 학교에서도 유지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친구와의 트러블은 아마 친구들 성향 파악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일어난 일들일테니 앞으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꺼라고 말씀드리니 학기초 이후에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문제였다고 내 말에 공감하며 그 부분은 이젠 괜찮아보인다고 하셨다.
아이를 위해 놀이치료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나니 선생님도 아이의 행동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어서 좋으시다고 했다. 우리 역시 아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어필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이긴 했다. 젊고 의욕이 넘치는 선생님이셔서 아이의 어려움을 그냥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상의하려고 하셨던 것 같아 선생님께 감사했다.
사실 1학기때 선생님은 아이의 문제를 나와 통화할 때마다 굉장히 친절한 말투이시긴 했지만 귀찮은 일을 처리한다는 느낌을 지우긴 어려웠었는데 2학기의 선생님은 정말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아이의 어려움을 들여다보려 하신 느낌어서 그 차이가 확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어떤지 한번 여쭤봤는데 친구 관계는 나쁘지 않은 편이나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대부분의 남자친구들은 나가서 노는데 A는 책을 읽거나 종이접기 등에 몰두하는 편이라 함께 어울리도록 조율을 해볼까 싶다고 하시길래, 그저 아이가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는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이 더 즐거운 것이니 일부러 붙여놓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메디키넷이 작용하는 시간이라 조금 예민하고 책을 읽거나 종이접기를 하는게 더 잘 읽히고 잘 만들어져서 몰입하고 싶은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서는 같이 노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긴 한데 등교할 때 친구들과 함께 하고 하교 후에도 친구들과 종종 어울려놀고 있으므로 억지로 시간을 만들 필요는 없어보였다. 친구들과 노는게 더 재미있어지면 당연히 그 시간을 늘 것 같아보인다.
대신 혹시라도 아이가 수업 시간에 하는 놀이에서 배제되거나 괴롭힘 등을 당하는 상황이 생겨나는지만 눈여겨봐주시기를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그런일은 없고 있어도 안된다고 하시며 그 부분은 걱정말라고 해주셔서 마음이 놓였다.
결과적으로 놀이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씀 드리긴 했지만 아이의 어려운 점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아이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매우 열심히 하고 선생님께 인정받을 정도로 자신의 역할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쁜 통화시간이었다.
1년동안 아이가 받은 치료들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 역시 어떤 시선으로 아이를 봐주느냐에 따라 아이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역시 배웠다.
앞으로도 아이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이렇게 이쁘게 봐주시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길 빌어본다. 나 역시 아이가 이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집에서도 많이 노력해야겠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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